불협화음

그림의 소용돌이 안에서. 크리스 라브로이(Chris LaBrooy)의 고향은 스코틀랜드 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위스키 양조업에 종사한다. 그의 선택이 눈에 띄는 것도 이런 환경 때문이다. 그는 예술을 선택했다. 만약에 그가 위스키와 사랑에 빠졌다면, 우리는 이런 환상적인 장면을 영원히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포르쉐의 초월적인 자태들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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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는 시각적 모순이다. 초현실주의 사조에 기반을 둔 작품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키는 1차적인 장치다. 마치 반어법처럼 말이다. 동시에 블랙 코미디와 같은 묘한 유머 코드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예술가가 그렇듯 라브로이의 삶도 작품과 닮아있다. 그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만 봐도 그렇다. 그의 강아지는 몹스(독일에서 퍼그를 ‘몹스ʼ라고 부른다)와 비글의 혼혈로 귀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는 태어난 지 다섯 달 밖에 안 된 귀여운 새끼 강아지에게 무려 엔초(Enzo, 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의 이름)란 이름을 지어줬다. 귀여운 강아지의 외모와 엔초란 이름이 가진 각지고 날렵한 이미지도 모순적이지만, 더 재미있는 건 그의 차가 포르쉐라는 것이다. 자신의 작품에도 등장하고 자신의 차도 포르쉐인데 정작 그가 사랑하는 귀여운 강아지에게 엔초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라브로이가 장난끼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두 번째 강아지 이름은 페르디난트(Ferdinand, 포르쉐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이름)라고 붙일 수도 있겠지요.”

반면 그의 작업실은 너무도 간결하고 깔끔했다. 작품의 배경이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깔끔하고 절제된 느낌이었다. 그의 집 한편에 있는 작은 방을 작업실로 쓰고 있었다. 방에는 책장과 세 개의 의자, 책상 위에는 커다란 모니터와 그래픽 보드가 전부였다. 그가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전부였다. 그는 이 집에서 캘리포니아 출신의 아내 제시카와 9살이 된 아들 체이스 그리고 엔초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집이 있는 엘론은 인구 약 10,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애버딘에서 A90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30분 정도 달려야 하는 거리다. 이 때문인지 찾아오는 관광객도 거의 없다. 그의 집은 이 작고 조용한 도시에서도 변두리 주택가에 있다. 그가 살고 있는 곳 역시 작품에서 느낀 현대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작고 조용한 도시의 변두리보단 뉴욕 같은 대도시가 덜 어색한 건 확실해 보인다.

현실에 대한 특별한 시선

라브로이는 제품 디자이너로, 명성 있는 영국 왕립 예술학교에서 마스터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대학 졸업 직후 가구 디자인과 실용적인 디자인에 전념한다. 그는 이 시기에 두 가지 재능을 발견한다. 첫 번째는 애니메이션 렌더링이다. 이를 통해 현실을 재현하고 때때로 현실을 능가하는 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두 번째는, 그림의 흡입력, 즉 힘의 위대함이다. 이에 대한 예로 그는 그가 인정하는 디자이너인 마크 뉴슨(MarcNewson)을 내세운다. 마크 뉴슨의 출세작인 록히드 라운지(Lockheed Lounge, 1986년)는 생존하는 디자이너의 첫 실물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품 경매에서 백만 파운드가 넘는 금액으로 낙찰되기도 했다. “모두가 이 오브젝트를 사랑해요. 하지만 이 작품을 단 한 번이라도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작품이 아닌, 작품의 그림 혹은 사진을 사랑하는 셈이죠.”

라브로이가 말했다. “Stop making things!” 그는 현존하는 것들 중에 대부분은 어차피 인류에게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은 필요하다. 첫 애니메이션 작업 이후 맡게된 까다로운 정유 회사의 타이포그래피작업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라브로이가 가장 잘 하는 것은 생동감 있는 타이포그래피이다. 그는 실제 물체들을 문자나 단어로 탈바꿈시켰다. 예로 ‘Made in USA’를 테마로 한 타이포그래피를 타임지의 커버를 위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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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떠 있는 듯한 조형물

하지만 이것으로 라브로이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에게 주문받는 일러스트레이션만큼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개인 작업이다. 여기서 미리 말하자면, 라브로이의 작업은 트랜스포머와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전혀 영향 받지 않았다. “그것들과 제 작업들은 전혀 상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만드는 것은 전투 로봇이 아니거든요.”

그가 컴퓨터를 켜고 한 손으로 그래픽 보드의 펜을 들어 습관적인듯한 동작으로 몇 개의 선을 긋는다. 그의 손은 위로, 밑으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그리고 다시 위로 미세하게 움직인다. 몇 분 되지 않아 모니터 화면에 도시 풍경의 실루엣이 드러난다. 이것은 첫 번째 대략적인 스케치일뿐이다. “그림이 완성될 까지는 몇 주가 걸립니다. 물론 컴퓨터의 엄청난 성능 덕분에 아이디어가 있다면 짧은 시간 작업해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결과물은 만들 수 있어요.”라고 라브로이는 말한다. 그는 자동차를 예로 들더니 단 몇 초만에 차량을 도색한다. 그가 광원을 다른 위치로 움직이자, 잠시 후 차량을 비추는 빛의 방향이 새롭게 렌더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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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라브로이: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가구와 오브젝트 디자인을 통해 일상적인 사물을 새로운 조형물로 만들었다. 그의 작업은 타이포그래피, 건축, 제품 디자인 그리고 조형 미술 사이 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포르쉐 카이맨을 스케치하는데 몰입하고 있다. 그리고 차량은 금세 변형의 과정을 거친다. 그는 몇번의 손놀림만으로 차량의 하부 구조를 육중한 삼각의 형태로 변형시켰다. 비슷하게 변형된 두 번째 포르쉐가 함께 매달려 있다. 두 개의 차체가 서로 감싸안으면서 기이한 형태의 덩어리가 됐다. 동시에 무중력 상태로 공중에 떠있는 듯한 조형물이 됐다.

수영장 안에 포르쉐

라브로이의 3D 그래픽은 깨끗한 일러스트레이션이면서 천체적인 공간으로, 묘한 고요함과 태연함을 발산한다. 이 작품에서는 수영장이 있는 현대적 건물이 묘사된다. 수영장 안에는 열두 대의 하늘색 911이 빽빽하게 채워져 물 위에 가볍게 떠있다. 이 작품의 결정적인 구성요소는 잘 다듬어진 건축적인 배경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배경으로 들어가는 건축물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작품마다 주제에 부합하는 다양한 건축물을 배경으로 넣는다. 예를 들어 라브로이는 캘리포니아 팜스 스프링스에 있는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Case Study Houses) 앞의 수영장을 그림과 같이 연출하기도 하며 현란하게 빛나는 네온 광고물이 있는 어느 한 모텔의 주차장이나 70년대 일본 도시의 전위적인 건축물을 배경으로 삼기도 한다.

그는 작업물을 자신의 웹사이트에 공개한다. 그에게는 갤러리스트가 따로 필요치 않다. 그는 “아직은 아니예요.”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업체나 매거진을 통해 들어오는 일만으로도 지금까지 생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라브로이는 건축물이 실물같이 보이도록 하기 위해 그 어떤 것도 우연에 맡기지 않는다. “저는 모든 소재들, 텍스처와 표면들을 모은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어요. 이를 통해 모든 건축물을 거의 실사처럼 표현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의 깊은 눈썰미와 카메라로 꾸준히 새로운 소재의 모티브를 찾고 있다.

우리는 라브로이의 빨간색 카이맨을 함께 타는 동안 그가 차량의 사운드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스포츠카를 미학적이며 청각적으로는 하나의 예술이라고 했다. 꾸준히 모델을 발전시키는 포르쉐는 디자이너인 그에게 있어 매혹적 존재가 분명했다. “모터스포츠 차량과 양산 모델의 기술 공학적인 결합이 저와 같은 주행자에게 특별히 더 많은 확신을 줍니다.”

라브로이는 포르쉐를 타고 정말 스포티하게 주행하고 싶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제한속도을 넘어, 독일의 아우토반 위에서처럼 말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 경찰은 매우 엄격해요. 한치의 양보가 없어요. 이곳에선 작은 국도에서조차 속도를 준수해야 하지요.” 아쉽지만 하이스피드와 원심력 그리고 야자수에 매달려 있는 포르쉐 모델들에 대한 그의 꿈은 당장은 그의 작품 세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Jan van Rossem
사진 Christian Gr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