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sche - 스피드의 미학

스피드의 미학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영화배우 키아누 리브스. 포르쉐와 모터사이클을 사랑하는 그는 언제나 헐리웃의 화려함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 미학을 중요시하는 그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해 본다.

키아누 리브스는 높은 브랜드 충성도를 갖고 있다. 원한다면 그는 전세계 생산되고 있는 모든 최고급 스포츠카들을 가질 수 있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가 주연을 맡았던 ‘매트릭스’ 3부작만 하더라도 전 세계 17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입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포르쉐의 것이다.

정확히 말해, 포르쉐 911의 것이다. 그는 슬라이드 선루프와 수동 변속기가 장착된 검정색 카레라 4S를 타고 다닌다. 이 두 가지는 자동차 사양 중 그가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며, 그가 말하는 ‘주행의 미학’에 걸맞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커브길을 도는 짜릿한 재미뿐만 아니라 언제나 빠르고 효율적인 주행을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911의 커다란 매력이죠. 저는 이미 이 차와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깊은 내면의 관계는 911이 그가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자동차라는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키아누 리브스와 911의 관계는 그가 일하고 있는 이곳 헐리웃에서는 보기 드문 일부일처제식 사랑이다. 헐리웃 스타들이 자신의 커리어 내내 오직 한 매니저와 함께 일하거나 일생동안 자신의 아내에게만 충실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 듯이, 이곳에서 한대의 자동차만을 소유한 스타를 찾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포르쉐에 대한 애정의 근원은 어디일까? 베이루트에서 태어난 그는 시드니에서 뉴욕을 거쳐 캐나다까지, 3개의 대륙에서 성장했다. 어렸을 적 그는 매치 박스 미니카인 검정색 ‘존 플레이어’를 가장 좋아했다. 금색 프레임을 장착한 이 자동차 외에도 그는 회색 포르쉐 911과 붉은색의 페라리 512 베를리네타를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의 실제 자동차 중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시트로엥과 그의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메르세데스 450 SL였다. 하지만 그의 뇌리 속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바로 그의 할아버지의 911 타르가였다.

그 당시 그의 장래희망 1순위는 핵물리학자였다. 하지만 TV에서 중계되는 모터 스포츠 경기를 즐겨보던 그는 카레이서가 되고 싶어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에 든 것은 레이싱카의 멋진 외형과 엄청난 사운드였다. 마침 그의 여동생이 그 당시 카레이서와 사귀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는 여러 차례 남프랑스에서 열리는 레이싱 투어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그가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꼽은 직업이 바로 영화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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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륜 혹은 사륜. 키아누 리브스에게 중요한 것은 주문 제작형 모델이라는 점이다.

17살 그의 첫 차는 영국 레이싱카 스타일의 녹색으로 도색된 볼보 122였다. 헐거워진 시트 위에 벽돌을 올려놓자 무너져 내릴 정도로 오래된 차에 그는 ‘덤피(Dumpy)’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오래된 차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덤피를 타고 1985년 토론토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 이르는 머나먼 주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모터사이클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 특유의 사운드, 속도 그리고 흥분되는 주행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은 1973년에 생산된 노튼 코만도(Norton Commando)였으며, 1987년에 구입한 이 모터사이클을 현재까지 소장하고 있다.

그의 영화배우로서의 커리어도 이때 시작되었다. 그는 독립 영화와 틴에이지 코메디 영화를 거쳐 리버 피닉스와 함께 열연한 명작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냈다. 이후 그의 대표작 ‘폭풍속으로(Point Break)’와 ‘스피드(Speed)’를 통해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영화 ‘스피드(Speed)’에서 그는 로스엔젤레스 경찰 소속 폭발물 전문가 역을 맡았다. 산드라 블록이 운전하는 버스 안에는 50마일 이하로 주행 시 터지도록 설계된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고, 그는 버스 안의 승객들을 안전하게 구출해 내야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의 모터사이클 사랑은 계속되었다. 그는 촬영을 하는 장소마다 모터사이클을 한 대씩 구입했으며, 촬영이 끝나면 팔곤 했다. 해가 갈수록 거듭되는 교통사고는 모터사이클의 물리적인 한계와 자신의 한계까지 동시에 보여주었지만, 모터사이클에 대한 그의 사랑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폭풍속으로(Point Break)’와 ‘스피드(Speed)’ 이후 4륜 자동차에 대한 그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하고, 이미 포르쉐를 알게된 그는 911 카레라가 이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차라는 답에 이르게 된다.

그는 검정색 911 카레라 4S(타입 993)를 선택했다. 물론, 슬라이드 선루프와 수동 변속기가 장착되었다. 그는 스포츠 테일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운드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포르쉐 특유의 주행감에 매료되었다. “그 당시에는 틈만 나면 태평양 해안도로와 광활한 그랜드 캐니언 도로를 달리곤 했죠.” 그는 포르쉐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와 그 외 다양한 포르쉐 주행 트레이닝에도 참가하여, 2009년 롱비치에서 개최된 연예인 레이싱 대회인 토요타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영화 촬영 도중 그의 911이 도난 당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엄청난 속도감과 날렵함에 그는 그의 911에게 ‘눈썰매’라는 이름을 붙혀 주었다. 그는 마지막 공랭식 모델 중 하나였던 그의 911에 대해 “그것이 제 포르쉐가 도난범들의 표적에 들어가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아요.”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그는 새 911을 구입하기에 이른다. 그는 옛 911과 똑같이 생겨야 한다는 조건 외에도 몇 가지 특이한 맞춤 사양을 원했다. 비버리 힐즈에 있는 포르쉐 고객 상담 센터에서 그는 자신의 911에 개별 맞춤 사항들을 추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문의했다. 검은색으로 산화 처리된 차량 인테리어 내장재와 스티어링 휠 위에 표시된 포르쉐 센터 마크가 그의 개별 요구 사항이었다. 그리고 독일 포르쉐와의 협의 끝에 그의 요구사항에 대한 오케이 사인이 내려졌다.

그는 그와 동시에 할리 데이비슨 한 대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개조시키려고 했다. 맞춤형 시트를 원하던 그가 만나게 된 사람은 로스엔젤레스의 모터사이클 개조 전문가 가드 홀린저(Gard Hollinger)였다. 하지만 홀린저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할리 데이비슨을 개조하는 것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우스 캘리포니아에서 헐리웃 스타가 건네는 백지 수표를 거절할 사람은 몇 안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솔직함이 키아누 리브스에게 강한 인상을 주게 된다. 그는 홀린저와 함께 곧바로 새로운 아이디어 발굴에 착수하게 된다. 새로운 모터 사이클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철학에 충실했다. 911을 하나의 이상향으로 두는 동시에 모터 사이클을 그 기술적 유산의 현대적인 해석, 즉 일상과 고속 주행을 병행할 수 있는 차량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 둘은 아치 모터사이클 컴퍼니(Arch Motorcycle Company)라는 회사를 공동 설립하게 된다. 키아누 리브스가 그의 신형 911을 가지고 신작 ‘존 윅’ 촬영지에 가있는 동안, 홀린저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완벽히 구체화시킨 KRGT-1을 완성시킨다. 서스펜션, 주행 성능, 인체 공학적 설계, 이 모든 것이 키아누 리브스가 상상했던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고, ‘퍼포먼스 크루저’ 또는 ‘스포츠 크루저’라 불리게 될 새로운 모터사이클의 방향을 제시하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KRGT-1은 현재 단일 모델이지만 주문이 들어올 경우, 연간 최대 100대까지 생산해낼 수 있을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그는 이 결과물에 대해 매우 만족한 듯, KRGT-1에 대해 ‘포르쉐와 마찬가지로 운전자 친화적’이라고 언급한다. 시대를 초월하는 스타일 역시 포르쉐와 닮아있다. “주펜하우젠의 스포츠카들과 마찬가지로 눈부신 외형과 최고의 주행 성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키아누 리브스가 추구하는 이상적 차량의 모습이다.

Lawrence Dietz
사진 Axel Köster